1/20 베이징….아니 서울 일기??

일기 올린지 한참됐네…

근데 나의 게으름만 탓할수가 없는것이… VPN서버가 접속이 잘안된다. 에이 ㅡ.ㅡ!!!

홍콩의 디킨즈가 1월1일날 결혼하는 바람에 새해는 얼결에 홍콩에서 보내게 됐다.

홍콩의 몇몇 친구들도 만나고 (어이없게도 아이비는 1월2일날 결혼한댄다 >_<)
디킨스결혼식에 온 대만의 지미랑 쿵롱도 만나서 같이 관광도 하고
통큰 아내 제씨의 명령에 따라(?) 최신 스마트폰도 구입하고 ㅋㅋ

새해 0시에 벌어지는 홍콩의 불꽃놀이를 보려고 구룡반도로 향했던 우리는…. 인파를 보고 좌절하고 말았다.

(아직 2시간정도 남았….는데)

게다가 지미가 상태가 메롱이어서 호텔로 돌아와서 호텔라운지에서 새해를 맞이….쩝..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서, 이제 1월 1일부로 둘다 공식적인 백수가 되어버린 우리 부부는…. (쿨럭)

아침에 대략 8시반~9시쯤 비비적거리며 일어나서 -> 대충 아침찾아 먹고 -> 텔레비전 책 컴퓨터 등등 원하는 시간 소비 -> 점심때 장모님이 찾아오셔서 밥차려줌 -> 같이 먹음 -> 장모님 설겆이 하시고 다시 농땡이 -> 저녁때 장모님 오셔서 밥차려줌 ->(…) -> 자러 감…..
이라는 극악의 패턴(??)을 즐기면서 살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프리랜서 (나) 사업준비 (제시)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이건 뭐 영락없는 한량의 삶..
……….누가 그러더라 한량으로 살려면 정신력이 강해야한다고;;;;

프리랜서래니까…. 범상치않은 프랑스인 라파엘이 알바를 주기로 했다. 기간이나 스코프는 정해져있지 않고 일이 있으면 그냥 한껀마다 시간당 금액으로 받는다. 머 돈이 문제가 아니라, 최근에 배운 python과 django와 jQuery를 갈고닦을(?)기회라서 괜찮다.
몇년만에 다시 코딩을 하다보니 느끼는건데 역시 개발은 코딩만 하고 분석만 하고 관리만 하고 그렇게 따로 따로 하는것만 알면 안되고 각각을 다 잘 알고 손에서 놓지 않아야 균형잡힌 체계와 시각을 유지할수 있는듯 하다.

설날 맞이 한국에 귀국했다. 제씨는 뱃속의 뽀뽀를 위하야 집에 남아있고 ㅋㅋ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몇몇 아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뭐 ㅎㅎ 다들 어려움이 있는듯 하다.
사업 하는 사람, 회사다니는 사람, 싱가폴서 사는사람 등등.
글치 뭐 요즘같은 시절에 누가 그리 편히들 살겟어. ㅎㅎ

오늘은 진하를 만나서 일거리 논의 하러 간다. ㅋㅋ 어디서 눈먼돈이나 굴러오면 좋~~을텐데

good bye to my father-in-law

i guess every death leaves regrets behind.
i’m so sorry that my father in-law passed away such a sudden way, just a year after retirement and just before become a grand daddy…
i didn’t have chance to talk with him deeply, since we don’t know each other’s language well..
i regret i couldn’t do any for him or for Jessie….

it was Saturday morning we got a sudden call from Jessie’s mom – and we found Jessie’s dad had partial paralysis after rushing to their house. i thought it would not be a big one since it went back to normal by the time we bring him to near by hospital. maybe i just hoped so. or maybe i just didn’t believe things like this will come to us.
even himself thought like that, he said he’d like to go back home. which only made him to call me again on afternoon to bring him back to hospital…

after the admission to the hospital, looked like he was getting better. but then…on Sunday morning, Jessie and i found he was already in a coma. Jessie’s mom start crying.
i’ve seen my grandmother had a stroke and then had a coma.
she passed those long steps in more than a decade. but for my father in-law, it was just a day.

all the relatives came to hospital.
after one night, he passed away.
worst part was that we couldn’t do anything….

it’s been only one and half year that we become in-laws. i’m the newest one in the family. neverthless, you took same care to all of us. i don’t feel any distance between us…
you were a fun loving uncle who can share jokes to everybody.. only that i can’t make all of them understood.
i know how difficult for you to accept the foreigner son-in-law at first.
i understand awkward feeling when we are together but can’t freely talk with each other.
maybe that’s why we tried to understand more and tried to put each other first. really you didn’t need that.
although you didn’t tell me, it was so obvious you care us…. such as give me a hottest pepper to chew. ha. well, sorry for the sour skittles…

your brother’s name ends with 山 and yours ends with 水, i guess Jessie’s grand parents loved to see you be a person like the mother nature. i can say you were like that. give all the efforts, love and help to grow your child, accept what you got and be happy with them….

Jessie and her mom is now getting better but they will miss you ever, without you our family will never be same.
who can make us laugh over the dinner table, and who can make the great dinner as you usually did? who can we rely on all those decisions and others?
i’ll try, i know i can’t make a good cook, but i’ll try to… that’s what i can do to mourn you and remember you. i’ll gratefully succeed your task lists for Jess, her mom and our future kids.
when our kids grow up, we will let them know how kind and nice person you were…
please be in peace, and be with us. we will always miss you. bye.

12/02 베이징 일기 – 중국은 애낳기가 힘들어 (준생증)

저어어어번 부터 준비했던 초혼미육증명(初婚未育证明)이라는 기괴망측한 문서를 드디어 만들어서 제출, 각고의 노력끝에(??)  준생증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물건을 받아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 일단 중국은 무조건 1명만 자식을 낳을수 있기 때문에 예비 부모가 각각 처음결혼이고 애가 없음을 증명해야 한댄다.

“나는 외국인이잖아!”
“응 근데 준생증이 있어야 국가보험에서 주는 6만 위안을 받을수 있대”

6만 위안 == 6만 * 178원 == 큰돈이다.!!!!!

“아 그래 당연히 받아야지!!!! >_<”

그…근데 한국에 저런 증명서가 있을리가 없잖아. 영사관에 문의해보니까 접수 받는 중국 사무소마다 다 다른 소리를 해대기 땜시 -_-; 정확한 답은 없댄다.
일단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관계증명서가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각각 작년이랑 올해 초에 받아놓은게 있긴 했다.
아무 생각없이 이걸 제출햇으나 하이디엔 베이샤관 거리에 있는 멍청한(???) 사무 직원은 이 서류에는 <초혼>과 <미육>이라는 글자가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야이….

다시 영사관에 물어봤더니 영사관에서 그 두 문서를 가지고 공문 만들어 주는게 있댄다.
그래서 영사관에 갔더니 이 서류들은 3개월 내에 발급된걸로 해야된댄다.
아놔… 한국 다시 가야하나?? 근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번 중국 사무소에 전화해보라고 해서 전화해봤더니 거기서는 또 상관없댄다. 이런 씨….

그래서 영사관에서 받은 공문 덕에 준생증 퀘스트를 끝냈다.

요즘은 django를 가지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기본적으로 DB를 설계할 필요가 없고 admin사이트가 자동으로 만들어져서 좋긴한데, 파이선도 처음 써보고 이 프레임웍도 처음 써보는 덕에 진척은 느린 편이다.
그리고 테스트 프레임웍이 잘되어있어서 좋긴한데 몇몇 테스트 케이스는 오동작 한다 ㅡ.ㅡ; 이걸 어째.. 흐음.
어쨌건 잘만 만들어놓으면 여러 방면으로 확장이 가능할듯 하다.

11/11 베이징 일기

회사가 몇달전에 동3환으로 옮기고 나서 (그 괴상하게 꺾인 꼬인 CCTV빌딩 바로 건너편), 혼자 출근할때는 지하철을 탄다. 대략 한시간 정도 걸리는데 서서 멍하니 있으면 아까우니까… 책을 열씨미(?) 읽기 시작했다.

덕택에 저번에 사뒀던 테스팅 관력 책도 털어냈고…아이패드에 받아놓은 pdf로 (근데..다 영어다 T_T) 하인라인의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젤라즈니의 and call me conrad, he who shapes, king solomon’s ring 등등을 읽었다. 지금은 베스터의 tiger,tiger를 읽고 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한국말과 영어는 가면 갈수록 줄고 중국어는 절대 안는다. ㅡ.ㅡ; 줴기 나의 꿈인 5개국어는 언제 가능한것이냐 >_<;;; 죽기전엔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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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번주였나? 아침에 제씨가 일어나서 나한테 그런다. “뽀뽀가 나를 발로 찼어!”
…근데 왠지 분하다는듯 서럽다는듯이 말한다.
아니 태아가 뱃속에서 찰수 있는게 그럼 엄마밖에 없지 이사람아…..

근데 제씨가 그얘기를 회사사람들하고 하다가 이상하게 결론이 나버렸다.
‘담번에 애가 또 발로 차면 오빠(그러니까 나….)를 차주자!’ 뭐 이렇게 -_-; 이런 조크는 재미없다구
결국 며칠뒤에 아침에 잠도 덜깼는데 걷어 채였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지금은 물론 하루에 수십번(??)을 꼼지락거리고 발길질을 하므로 일일히 얻어맞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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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달에 장인어른이 몰다가 접촉사고난 울집 자동차 수리를 맡겼다.
여기는 자동차 보험이 좀 어이가 없는데,
보험사에 전화해서 수리받는게 아니라 일단 보험사무실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수리를 받아야하고 (…….그러니까 사고난 차를 몰고 가야한다 -_-),
보험사 처리번호를 내가 아무 카센터에 가서 주는게 아니고 보험사가 공업사를 지정해주면 무조건 거기로 가야하는데 (……..근데 어차피 집근처에 공업사가 없다 >_<),
사이드 미러를 갈고나서 수리비를 보험사가 주는게 아니고 보험사가 지정한 부품으로만 교체해야한다.
여기에 더더욱 문제는….울집차는 살때 써비스랍시고 (??? 썅 바닥 깔개도 안주는 차에 무슨 서비스람) 사이드미러를 큰걸로 바꿔서 줬었다. 근데 보험사에서 주는건 기본형 사이드 미러…결국 왼쪽 오른쪽이 다른 사이드 미러가 되어버렸다. 장난하냐?? 내돈내고 큰걸로 바꾼다고 하니까 안된댄다. 보험처리 한번 했으면 자기들은 그거대로 해야된댄다. 대륙의 관료주의
휀다 판금 수리를 맡겼더니 일주일 걸린댄다. 앞뒤로 줄서있는 차들을 보니 그럴만해 보인다.. 무슨 자동차 줄이 만리장성같이 쭉 서있다 ㅡ.ㅡ; 중국이 만리장성을 쌓은 이유는 그게 그들이 잘하는 특기기 때문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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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온지 1년이 다되간다. 작년11월에 냈던 1년짜리 거주증이 다되가는 관계로 저기 용허공雍和宫에 있는 비자사무소에서 재발급 신청하고 왔다.  무슨 서류를 잔뜩내야하는데 경찰서 거주등록, 결혼증, 후커우 사본등등, 여기는 정말 bureaucracy가 예술의 경지에 접어든 곳이다.

하지만 내 비자따위는 쨉도 안되는 껀수가 있으니 그건 바로 셩위정生育证.. 애를 낳을려면 먼저 등록을 해야하는데, 내가 예전에 결혼한적이 없고 애도 없다는걸 증명할 서류를 가져오랜다.
“난 한국사람이잖아 근데 내가 이런 증명서를 내야되?”
” 안그러면 사무소에서 서류 안만들어준대”
결국 영사관에 물어봤더니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번역해서 제출하고 필요하면 영사관에서 확인도장을 찍어줄수 있댄다.
“저…영사관 확인이 필요해?”
………물론 관료체계에 무지한 우리가 알리가 없다.
제씨가 여기저기(구체적으로는 동사무소하고 노동부사무소정도 되는거 같다…)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각각 ‘우리도 잘 모르겠다’ 와 ‘일단 그냥 가져와봐라’ 정도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고.
그래서 지금 그 두개 서류는 번역소에 안치된-_- 상태고 번역이 끝나면 다시 여기저기를 다녀야한다.
물론 한방에 통과될거라는 보장은 없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은 굉장히 농후 하다. >_<;

10/25 베이징 일기 – 이사…완전 수동 이사

드디어 엊그제 이사를 다 마쳤다. 집을 계약한건 저번달인데 무슨 이사하는데 한달이나 걸리냐…

새 집이 예전에 살던 집의 바로 옆이라 (걸어서 3분 + 엘레베이터 기다리는데 5분) , 대륙의 기상을 가진 처가 == 刘씨네 집안 사람들은 그냥 짐을 죄다 맨손으로 나르기로 결정했다. 물론  내 의견은 묻지 않았다. 췟.

10월 첫째주의 궈칭졔(国庆节국경절)동안 이케아 및 다른 가구점을 4번씩 들락날락 하면서 – 내가 알기론 이케아는 적당한 가격대에 적당한 퀄리티를 세일즈 포인트로 하는데 이상하게 여기 중국에선 고품질(….) 고급 가격대(….) – 집안에 가구들을 거의 싹 새로 들이고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근데 맨손으로 나르는건 좋은데 무슨 우공이산의 고사를 재현하시려는건지 다들 하루에 상자 한짝 두짝만 옮긴다… 아이고 답답해… 이래서는 이사하는데 석달은 걸리겠다 ㅡ.ㅡ;
거기다가 싀징샨에서 장인장모님의 가구를 예전 집으로 옮기는 통에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장모님은 집안정리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ㅡ.ㅡ;
다년간의 자취로 단련된(???) 나에겐 이런 상황은 꽤나 성가신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집을 정리하고 청소해도 우리어머니는 뭐든지 문제점을 찾아내곤 했다 ㅡ.ㅡ 도대체 뭐지?)

그래서 금요일날 저녁때 제씨를 불러다 앉혀놓고 진중하게 <자! 주말에 죄다 옮기자!!> 라고 선언했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날 아침까지 있는 짐을 죄다 싸서 날르기 시작했다.
짐들을 죄다 1층으로 내려놓고 장인어른의 차에 넣고 옮기면 좋겠건만 알수없는 대륙의 이유로 인해(… 뭐 이런거 저런거 다 따지면 급격한 노화가 일어나므로 넘어가기로 했다.) 짐을 그냥 하나씩 옛 집에서 새집으로 나르게 되었다.
보통은 한번에 다 실어서 한번에 다 내려서 옮기누만….쩝.

덕택에 일요일 저녁 그리고 어제 퇴근한 후 짐넣고 집청소하고 하느라 급기야 어깨에 담이 들었다. >_<;;

아무래도 우리인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것이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제씨에게 물어봤다.
혹시 중국에는 포장이사 서비스 없냐고… 그랬더니 이삿짐 센터는 있는데 짐을 싸는것과 푸는것은 안해준댄다.
“어 그럼 돈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사해?”
“그사람들은 아이(阿姨아줌마…파출부도 이렇게 부른다)를 써”
“그럼 그 아이하고 이사하고 합치면 그게 한국의 포장이사 서비스네..그걸 같이 하는데는 없어?”
“없는데?”
…………..왠지 중국사람들은 돈을 벌수 있는 기회를 전혀 잡을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10/09 베이징 일기

후아, 9월 한달간 일기를 하나도 안썼군…

별일이 없었던건 아닌데 이상하게 시간이 잘가서 그런건지..

일단 간추린 뉴우스 ㅡ.ㅡ;
* 제씨가 다시 임신을 해서 3개월째. 3개월지나고나서 이제 아침마다 입덧하는건 없어졌다.
* 바디가 북경에 출장을 와서 오랫만에 만났다. 아직 회사가 돈을 버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가고있다고 한다. 회사일에 상관없이 쾌활한 모습은 여전했다. 회사 경비 절감을 위해서 북경에서 션전까지 십수시간의 기차를 타러가는 녀석을 보며 역시 보통놈은 아니라는걸 느꼈다 ㅎㄷㄷ.
* 바디가 자기네 아웃소싱 개발 벤더라면서 소개해준 라파엘을 만났다. 프랑스사람  2명 + 미국사람 1명이 베이징의 화마오 빌딩에서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라파엘도 왠지 보통사람은 아닌 것 같은게, 노트북에 슬랙웨어 리눅스를 깔아서 쓰고 사용하는 x윈 매니저는 옛날 버전 KDE랜다. 자기가 사용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다 직접 컴파일해서 쓰다가 필요하면 수정하고 그런댄다.. -_-;; 바디랑 같이 셋이서 얘기하다 마침 asp.net으로 간단한 모듈 만들 꺼리가 있다고 나한테 혹시 관심있냐고 물어본다. 우연찮게 알바 꺼리 하나 건졌다.지금은 이미 다 만들어서  보내줬다. 돈만 받으면 된다…ㅡ.ㅡ;
* 제롬이 내년 예산작업하면서 얘기해줬는데 내년에는 계약을 못할거 같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하는 일은 연말까지만 하고 담엔 백수되게 생겼다.
* 집을 이사하기로 하고 셋집을 찾아봤다. 결국 현재집에서 걸어서 2~3분 거리에 있는 옆집 아파트로 이사가기로 했다. 한달에 7천위안을 부르는걸 왕창(?) 깎아서 6천3백으로 낙찰했다. 그래도 백만원 넘는 돈이다. 여기는 진짜 집값때메 못산다.
* 우리는 이사를 가고 지금 살던 집엔 장인장모님이 오시기로 하셔서, 세들어 살집에는 새로 가구를 사기로 했다. 가뿐하게 몇백깨진다. 문짝 두개달린 냉장고에 소파에 침대에 식탁에… 결혼하고 일년만에 신혼 살림 새로 장만중이다.  덕택에 1일부터 7일까지 휴일이었던 국경절 연휴중 4일은 가구 벽지 전자제품 사느라고 날렸다 ㅜ.ㅜ 여기 이케아 마트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_<;
* 중국어 수업을 같이 들었던 킴이 캐나다에서 돌아와서 같이 만나서 신나게 술을 펐다. 내가 아는 중국어 욕을 가르쳐준 덕택에 ㅋㅋ 킴의 남자친구 앨런(북경사람이다)은 날 째려봤다. ㅎ
* 대략 1년여만에 다시 잡은 넷핵 덕택에 (사실 사무실에서 할게 없어서…) 시간은 훌쩍 갔다.. 그리고 투어리스트로 어쎈션 달성했다! (국경절에 -_-);